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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

언론의 위기


 꿈을 꾸었다. 자주 보던 주간지 하나가 망했다. 놀라운 사실이기는 했지만 뭐 그리 일어날 법하지 않은 사실도 아니고 해서, 상당히 현실적이었다. 나는 '헐 시발' 정도의 느낌과 함께, '정기구독자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건가' 라는, 매우 사실적인 의문을 품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 확인해 보니, 그 잡지사는 아직 망하지는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공계의 위기고, 인문학의 위기고, 신자유주의의 위기고, K리그의 위기고, 뭐 북핵문제는 위기에서 언제나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지만, 언론에게도 마찬가지로 위기가 찾아왔다.


 대중음악의 위기는 전통적 수익모델이 붕괴하면서 촉발되었다. 문희준은 그 과정에서의 범죄자적 희생양이었다. 정신나간 소리를 여럿 해댔으니 욕을 먹을 만하기도 했지만, 그의 탓으로 모든 걸 돌리기에는 지나치고 또 지나치다. 어쩌다 보니 그가 십자가를 메게 되었을 뿐이다. 그를 가장 열렬히 비난하던 부류는 어쩌면, 다운로드를 가장 열심히 자행하던 부류 아니었는가. 이에 대해선 나 자신도 속죄할 거리가 매우 많다.

 종이로 만든 언론의 위기는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대중음악과 마찬가지로, 이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매체의 중심은 TV로, 인터넷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물론 아직도 종이언론의 기득권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TV뉴스를 선호하고, 젊은 세대는 인터넷에 더 친숙하다. 어쩌면 종이언론은 그 잘난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삐삐나 공중전화처럼 사멸하거나, 그저 명맥만 남은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방송이나 인터넷의 한계는 현 시점에서 명확하다. 방송은 막대한 자본투하를 요구하며, 따라서 수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여야 한다. 또한 그 포맷의 특성상, 어떤 주제에 대해 심도있는 분석이 그리 용이하지 않다. 인터넷은 쌍방향적이고, 수용자에게 토론과 참여의 장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인터넷상의 컨텐츠 생산자에게 대단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이제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고, 1인 미디어와 언론이 활성화된 시기가 왔다. 하지만 전문적인 직업인으로서의 기자가 지닌 강점과, 언론매체라는 틀이 잡힌 시스템, 기록문자 나름의 특성은 다른 수단이 아직까지는 미처 따라가기 힘든 유리함을 종이언론에게 부여한다.

 따라서 종이언론은 아직까지는 생존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우리는 미네르바를 보며 의외라고 느꼈지만, 단지 인터넷만의 힘으로는 미네르바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미네르바가 얻은 정보는 과연 어디서 나왔을지 생각해 보라), 온 천지에 그의 이름을 뿌리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비록 어떤 이들에게는 그의 이름이 혹세무민하는 악당을 연상하게 할지라도.

 종이언론이 없었으면 어찌 삼성특검이 있었고, 신씨의 재판개입이 드러났을 것이며, X파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겠는가. 설령 현재 인터넷이 그 모든 언론을 대체할 수 있다 여길지라도, 기성 언론의 역할은 인터넷상에서 형성되는 담론의 중요한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나마 언론이라고 불릴 만한 몇몇 언론사는, 특히, 몇몇 높으신 분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돼먹지 않은 이유로 더 고달픈 길을 가고 있다.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실이다. 만약 그들이 죽으면, 우리 국가 속의 민중들은 축사 안의 돼지 신세가 될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도살장에 끌려갈 날만 그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일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