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갔는데 1시간 넘게 기다렸다. 기다리며 오늘자 중앙일보를 펼쳤다. 대개 신문을 보면 헤드라인만 긁고 넘어가지만, 오늘은 인고의 시간 동안 좀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덕분에 포스트 3개 쓸 분량이 나왔으니, 내 앞에서 파마를 하던 많은 분들을 원망하겠다.
문창극 대기자의 칼럼을 읽고 글을 쓴다. 이하의 링크 주소로 가 보시라 - http://news.joins.com/article/3622474.html>
에헴.
존경해 마지않는 문창극 대기자님. 대기자님이 쓰신 칼럼에 깊은 인상을 받아 답문을 씁니다.
저는 정말 님의 글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인상'이란 게 너무 깊어, 마치 세상이 하수구처럼만 느껴졌지요. 덕분에 변기에 물 내린 것마냥 '인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당신이란 분이 뭐 해먹는 분인지도 여전히 모르겠고, 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기실 아까 알았지만, 거야 뭐 어떻습니까? 도마나 빌립은 예수를 뭐 오래 알고 지내서 그의 제자가 되었답니까. 심장을 내리찌르는 듯한 삘(感; Feel)이 있다면, 서신을 보내기엔 더없이 충분한 이유 아니겠습니까. 헤헤.
대기자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근조라는 리본을 달까, 말까, 달까, 말까, 달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셨다구요. 실존적인 고민이지요! 하긴 이건 정말 실존적인 고민입니다. 확실히 뭔가를 상징하는 표상을 채용한다는 건, 그 표상에 내재된 함의 또한 수용한다는 의사표현이니까요.
군대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200여명의 동기 훈련병 중에 14명인가 15명인가가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로션과 손톱깎기란 귀중품을 나눠주는데도, 이걸 회피한 인간이 무려 14명이나 존재했단 말입니다! 물론 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그 때 이후로 확신하게 되었답니다. 외적 행동을 강요하여 인간의 내심을 억압할 수는 없는 법이라구요.
사실 제가 세례를 받지 않은 건 취사지원을 나갔기 때문입니다만, 어쨌든 교훈은 교훈이지요. 매우 소중한 교훈이란 말입니다. 근조라는 리본도 달기 싫으면 대기자님이 달든 말든 누가 뭐라 한단 말입니까. 세례라는 의식을 굳이 행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대기자님. 사전을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근조(謹弔)란 말은
"사람의 죽음에 대해 삼가 슬픈 마음을 나타냄"
이란 뜻입니다. 만약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즉 인터넷이 된다는 소리니, 아무 사이트 사전검색에 들어가서 빨리 찾아보세요.
그러니까 근조 자체는 누가 뒤져서 슬프다는 뜻이고, 근조라는 리본은 그 애도를 상징하는 것일 뿐입니다. 근조란 글씨가 쓰인 리본은, 무슨 자살의 정당성이나 공인의 선택이 옳고 그르고 이런 차원의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하긴 뭐, 글 뒷머리에서 공인으로서 노무현의 선택이 어쩌고 저쩌고 열심히 말씀이야 하셨습니다만, 이런 말씀들은 그냥 앞 내용과 논리적 관련이 없는 사족(蛇足)일 뿐일 수도 있겠네요. 그 부분이 유난히 긴 건, 뱀이 진화해서 도마뱀이 되었다거나, 뭐 이런 비슷한 걸까요? 그럼 대기자님은 단지, 근조의 마음이 없으셨던 거지요.
뭐 슬퍼하지 않는데 굳이 슬퍼하라고 강요하는 건 안 될 일입니다. 오히려 괜히 강요하면 더 안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어떤 놈이 '웬수가 죽었다!'며 좋아 죽을 지경인데, 초상집에 문상 가선 얼굴만 억지로 찡그리고 있음 어떻겠습니까. 상갓집 입장에선 복장 터질 일 아니겠습니까냔 말입니다. 아니, 뭐 굳이 대기자님이 노무현의 죽음에 기뻐했다거나 그런 의미로 예를 든 건 아니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라는 절대절명의 원칙을 강조하려고 그런 겁니다. 대기자님은 본문에서,"그(노무현)의 죽음이 불쌍하고 안타까웠"고 "그가 겪은 고통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쨌든 슬프지는 않으셨던 겁니다. 그렇죠?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땅은 사랑하지만 투기는 하지 않았다, 뭐 이런 거랑 유사한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 뭐 굳이 슬퍼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실 저도 박통이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전혀 슬프지가 않더란 말입니다. 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딴 놈 뒤지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었겠습니까!
"아니, 이런 호로새키 보소. 나라의 큰 분이 돌아가셨는데 네 놈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니. 그 때 국민들이 얼마나 애통했는지 아느냐. 너는 대체 대한민국 국민 맞느냐! 이거 혹시 북괴가 파견한 간첩 아니야?"
라고 버럭 호통을 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박통이 죽은 건 제가 태어나기 전 일이라서 말이죠. 물리적으로 슬퍼할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슬픔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습죠. 저는 어쨌든 대기자님의 편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기자님은 슬퍼하실 필요가 없...
아니, 잠깐,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제게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을 안 했다는 양반은 결국 처벌을 받았고, 땅을 사랑하셨다는 장관분인가는 끝내 옷을 벗지 않으셨습니까. 생각해 보니 대기자님도 슬퍼하시긴 슬퍼하셨던 것 같습니다. 불쌍하고 안타깝고 고통도 이해가 되는데 슬프지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죠. 그렇죠? 슬퍼하셨군요. 대기자님도 과연 슬프셨겠구나 말입니다.
비통 침통 애통합니다. 뭐 그렇다고 칩시다. 어이쿠, 그런데 그럼 또 문제가 있군요. 이래 버리면 대기자님은 근조(謹弔)란 말의 뜻을 전혀 모르셨다는 말밖에 더 되느냔 말입니다. 이것도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군요.
정말 이상합니다. 출판업에 종사하기까지 하시는 마당에, 어휘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시다니요. 저처럼 방바닥에서 종일 뒹구는 애벌레 같은 인간도, 글 한 번 쓰려면 국어사전을 예닐곱번은 찾는답니다. 그런데 신문에 기고를 하시며 사전 한 번 찾지 않으셨다니! 게다가 대기자님 나이 정도 되면 한자를 대개 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자를 모르면 신문조차 읽기 힘들었던 때가 엊그제만 같은데 말이지요. 단어를 몰라도 한자를 보면 아실 일 아닙니까?
덕분에 대기자님께서 열심히 주장하신 자연인-공인 이분론도, 이 공인이란 게 公人인지 功人인지 公印인지 共認인지 公引인지 恭人인지 貢人인지 工人인지 아니면 公認인지 저로선 참 헷갈린단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자 혼용이 꼭 나쁜 건 아니란 말이죠.
"이 병신아! 문맥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설령 가장 가까워 보이는 공인(公人)을 채택한다고 해도 저의 공인(公人)에 대한 관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서 말입니다... 게다가 세상 더러워서 인생 하직하는데, 세상일 뭐 그리 신경쓰라고 노무현에게 강요할 이유가 어디 있답니까? 그리고 노무현이 죽어서 국가에 무슨 그런 지대한 악영향이 있다는지 글 안에서 제대로 논증도 안 되어 있구요. 뭐 어쩌란 건지 참...
대기자님. 아, 그러고 보니 대기자는 또 무슨 대기자인지 의문이 드는군요. 大記者일까요, 大器者일까요, 待機者일까요, 對機者일까요, 大忌者일까요? 저더러 찍으라면 3번을 찍겠습니다. 아, 한자 얘기가 나오다 보니, 제가 고2때 제 이름 한문으로 못 써서 개쪽 당한 일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이 빌어먹을 호적이랑 실명이랑 한자가 또 달라서 말입니다... 기자님은 이름을 한자로 쓰실 수 있으신가요? 뭐 하긴, 이건 주민등록이라는 행정적인 문제가 개입되니 물론 가능하시리라 믿습니다. 다섯 살 먹은 애들도 그림은 그릴 줄 알잖습니까?
아, 대기자님. 그러니까 리본을 거절하시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단 말입니다. 리본 나눠주던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리본을 건넸는데 반대편에서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싫어요!"라고 말하더란 겁니다. 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해 보시지요. 분향소에 왔는데 근조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하면, 당신은 뭐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생각할 거고, 이 인간은 왜 근조하지 않는가 생각할 거고, 그러면 왜 여기 온 건가 생각할 거고, 그럼 이 인간의 정체는 뭔가, 차곡차곡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혹시 당신 뉴라이트인가염?" 이란 질문이 나온 거구요.
아아, 대기자님. 그러니까 '분열과 갈등'을 만는 건 노무현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대기자님의 태도가 '분열과 갈등'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기자님의 그 편협한 사고방식이 '분열과 갈등'을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제발 좀 남을 이해하고 남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보시지요. 대기자님의 주장만 열심히 주입시키려 하시지 말고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대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