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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

경계의 불확정성

 자, 밤이다. 매우 깜깜하다. 깜깜한 도로에 가로등이 하나 있다.

 가로등은 길을 비춘다. 가로등은 길에 동그란 무늬를 낼 것이다.

 그 동그란 무늬 안으로 들어가 보자. 밝다. 당신은 당신의 손목에 찬 시계의 바늘과 숫자를 볼 수 있다.

 불빛 밖으로 벗어나 보자. 이제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곳 - 동그란, 정확히 말하면 타원형일 부분 - 을 보자.

 우리는 그것의 범위를 말할 수 있을까?

 멀리서 보면 불빛에 비추이는 특정한 부분을 골라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분필로 표시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의 경계는 매우 불확실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가까이 가서 보면 어디까지 불빛이 닿고 어디부터는 안 닿는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좀 더 진행해 보자. 마침내 당신은 가로등 불빛의 범위를 말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결론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기억하라, 당신이 부정할 수 있는 것은 '경계'이지 '빛'이나 '어둠' 자체가 아니라는 것. 빛과 어둠의 경계를 말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빛 또는 어둠 속에 있다' 는 발언이 어느 경우에나 불확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에는 명확하다.

 당신의 시계가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빛과 어둠의 구분이 모호하니 나는 빛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없소, 라고 답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