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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것들(논픽션)/요즘

실종

 대한민국은 민주적인 국가를 표방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 각하나 고명하신 국회의원 나으리들뿐만이 아니라, 임자야 뻔한 소규모 대학 동아리 회장, 초등학교 학급의 부반장까지 선거로 선출하는 게 보통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턴가 선거란 게 있었을 거다. 쉬는 시간에 떠드는 사람 이름 적는다거나 하는, 대표께서 맡으셨던 임무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교사의 '지명'으로부터, 나름 거창한 요식을 통해 학생이 대표를 '선출'한다는 건 (지금 생각해 봐도) 꽤나 그럴듯해 보이기는 했던 것이다. 6학년 때쯤엔 '전교 어린이 회장' 이었던가 하는 것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글쎄, 이걸.. 아니 얘를 선거로 뽑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 해 올라간 중학교는 나름대로 꽤나 '파시스트적인' 학교였는데, 왜 이걸 굳이 강조하냐면,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에 이르기까지 학생회장선거의 주요한 현안이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별로 역사가 깊다거나 알량한 전통이 있다거나 한 학교는 아니었지만, 그 분위기랄까 모양새랄까 하는 건 지나치게 오래 전의 전통에 충실했는데, 단촐하게 예를 들자면,

 

 요새는 안타깝게도 구시대적 유물로 전락해간다는 운동장 조회. 조회라고 해야 될지 점호라고 해야 될지 약간 헷갈리지만, 이후 구보가 생략된다는 점에서 조회라고 부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미친 듯이 이것에 집착했는데, 떠든다거나 하는 뻘짓으로 걸려버리면 단상 앞에 나와 기합을 받거나 했다. 뭐 교장 되시는 분은 굉장히 말씀이 많으셨는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기억나는 대사라고는 두어개. 하나는 『예전에는 벌이 와서 쏘아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 대일본제국 시절의 이야기란다. 다음은 미군정 시절, 『국기에 경례할 때 태도가 심히 무례했던 조선인이 하나 있었는데, 그에 분노한 미군 장교가 그넘을 쏘아 죽였다. 한국과는 달리 아메리카의 국가정신은 진정 위대하다』. 부동자세를 참으로 좋아하셨던 분이셨지요.

 

 뭐 이념과 사상이야 어떻게든 좋은 것이지만, 문제는 너무 스파르타적인 걸 강조한 나머지 학교에 매점이 없고, 심지어 자판기도 없었다. 정수기도 3학년 때 하나 생겼나, 겨울은 모르겠는데 여름은 물이 부족해 지옥이었다... 수돗물을 마시면 되지 않냐구? 글쎄, 지하수는 있었던 것 같은데... 여태 누가 그것 때문에 죽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으니, 왠지 기분만 좀 그렇지 사실 안전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개념없이 무지한 어린 중딩들은 매점 자판기 얼씨구 하며 열심히 학교측에 청원을 하긴 했었는데, 체육 교사의 답변이 명언이었다 - 『만약 매점이 생기면 내가 가서 박살내 버릴 거다』

 

 그런저런 전차로 하여, 치열했던 선거전 속에서 1학년 때는 매점을 설치한다는 후보가 당선, 2학년 때는 자판기를 설치한다는 후보가 당선, 3학년 때는 매점이었던가 자판기였던가, 아마 둘 중 하나였으리라고 기억한다. 공약이 실행되었냐구? 어이, 공약을 실천했으면 왜 3학년 때 똑같은 공약이 또 나오겠수?

 

 그때 이후로, 꼭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체로 투표에는 별 관심도 없고 아는 사람 있으면 찍던가 말던가 하는 성향의 소유자로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성실성(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관성')하나만은 유별났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별로 의사는 없었지만 정말 성실하게, 찍을 사람 없으면 하다못해 투표장에서 무효표라도 작성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였던 거다. 그렇지만 어쨌든 고등학교 때도 대표 선출의 과정이나 결과라던가 하는 데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솔직히 나에게는 바다 건너 멀리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더 그럴싸하고, 더 자신의 생활에 더 중요할 것 같으며, 또한 더 재미있기까지 했던 것이다.

 

 대학에 와서도 선거는 영 비스무레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공중분해된 것으로 알려진 단과대 세부 클래스 학생회라던가 하는 건, 일인(一人) 출마에 99%지지(꼭 반대하는 인간 하나씩 있다. 이쯤에서 적절히 등장하는, 『그럼 니가 하던가?』 라는 비난). 단과대 학생회는 정체불명의 인간들이 등장하여 선거 끝나자 잠적, 대학교 학생회는 분간할 수 없는 파당들의 경쟁 속에 주목할 만한 것은 저조한 투표율 하나뿐이었으니...

 

 우연히 모 대학 학생회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나'라는 사람이 속한 단체 (혹은 집단)의 '대표'들에 대한 괴리감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일반적인 대학의 학생회, 그들은 A라는 대학의 이름으로, 나름대로, 이런저런 입장을 '표명'하고, '행동'을 쌓아 나간다. 그들의 말을,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견해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반대한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A라는 대학의 구성원인 나와, A대학의 학생회의 이름은 왜 그렇게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드는 것인지.

 

 어설프게 생각하기를, 예전의 학생단체의 역할은 공동체의 의견을 수렴한다던가 하는 걸 떠나서,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고 본다. 공동체 밖의 더 큰 세상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 거의 모두 - 아니 전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이 공유하는 이상을 더 강력하게 하고, 행동력을 부여하는, 엔진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길거리에서 데모하는 것보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올바르지 못한 체제에 대항하는 게, 더 사회적, 도덕적으로 '정당'하며, '옳은' 것이라는 것도 압도적인 다수가 공감한다. 이런 '사회적인 이상'과 '개인적인 실리'의 선택을 개인들에게 맡긴다면, 결과는 실리 쪽으로 기울 것이다. 하지만, 단체의 힘은 미묘한 것이라, 결국은 누구도 언뜻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이상을 쫓아 전교생이 시위하러 나가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얼핏 아름다운, 하지만 옛날 얘기다. 지금의 대학생이 사회변혁의 투사가 될 필요성은, 분명 예전만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표자들의 위치도 가장 앞열이 아닌, 공동체의 중심에 서야 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꽤 예전부터 이랬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세한 부조화가, 대학에 와서까지 겪게 되는 괴리감의 원흉이 아닐지, 곰곰히 추측해 본다. 어쨌든 내가 느끼는 괴리감을 섣불리 일반의 괴리감으로 확대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겠지만, 굳이 여론 조사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일반적인 괴리감'을 이야기하는 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정체불명의 불안감 비슷한 걸 느낀다. 그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루어졌을 듯한 모 대학과, 과자 자판기나 정수기 같은 유치해 보이는 소품의 부조화 같은 것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약 괴리의 진짜 중요한 원인이, 단순히 사회의 민주화나, 변혁에 따른 구체적인 방법론의 변화 같은 게 아니라면 어쩌나 하고 중얼거린다.

 

 모두가 지향할 이상과 식자로서의 사명을 가진다는 전제 아래서나 성립될 법한, 학생회 체제. 과거 이상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그것이 도태되는 진정한 이유는, 이제 대다수에게 사회를 위한 목적의식 같은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래서 그것을 공유할 만한 체제는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제 사회의 대표적인 엘리트들이 공식적으로 개인의 안녕을 지상과제로까지 채택해 버린 게 아닐까. 대체 이 근거없는 불안감의 원인은, 어쩌면 지금 현실에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운 사실 - 이상의 실종 - 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가만히 생각한다.